통합뉴스는 지난 교수신문에 기획연재되었던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의 '섬 이야기'를 통해 섬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겨진 흔적을 돌아보는 취지로 이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두었다//(이생진 「섬 묘지」, 『그리운 바다 성산포』중에서)

어느 곳인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없을까마는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섬사람들은 급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설혹 그 이별의 대상이 자신과는 한 발짝 비껴선 이웃의 일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자신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섬에서의 이별은 누구에게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섬사람들은 언제나 가슴을 졸이면서 살아가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런 점은 금오도(金鰲島)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금오도는 여수시 남동쪽에 위치한 금오열도의 중심이자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큰 섬이다. 금오도라는 이름은 삼림이 울창하여 섬이 검게 보였기 때문에 ‘거무섬’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도 하며, 금빛의 거북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청구도(靑邱圖)」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거마도(巨磨島)’로 표기돼 있는데, 이 또한 ‘거무섬’을 한자로 표기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 금오도는 전남 여수시 남동쪽에 있는 금오열도의 중심에 있다. '순수했던 스무 살 시절의 첫사랑'을 느끼게 하는 금오도의 비렁길(벼랑길의 여수 탯말)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금오도에 입산벌채(入山伐採)를 금하는 봉산(封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오랜 기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금오도에는 아름다운 비경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섬에는 남해안에서 찾아보기 힘든 해안단구의 벼랑을 따라 아름다운 산책길이 조성돼 있는데, 바로 ‘비렁길’(‘벼랑길’의 여수 탯말)이다. 비렁길에는 배를 깔고 엎드려 상어를 낚았다고 하는 50m 높이의 ‘용머리’ 절벽, 깜깜한 밤에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은 ‘굴등’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 「인어공주」처럼 ‘순수했던 스무 살 시절의 첫사랑’을 느끼게 하는 곳이 바로 금오도이다.

이러한 아름다움 풍경 속에도 슬픈 이별의 기억이 남아 있으니 하나는 슬픈 역사에 대한 기억이요, 다른 하나는 일상적 삶에 대한 이별의 기억이다. 역사적 슬픔을 간직한 안도마을에는 1948년 여순사건 때 진압군에 의해 발생한 주민 학살 사건과 1950년 8월 미군기의 무차별적 사격에 의해 140여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은 민간인 학살 사건의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생채기로 남아 있다. 그리고 삶에 대한 아름다운 이별 하나가 야트막한 돌담장에 의지해 ‘징하디 징한’ 바다를 향해 누운 조그마한 초분(草墳)으로 자리하고 있다.

초분은 시신을 땅에 매장하지 않고 육탈(肉脫)을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임시 무덤을 말한다. 보통은 땅이나 돌축대, 그리고 나무로 만든 평상 형태의 단 위에 관을 놓고 짚으로 만든 이엉과 용마름을 얹어 놓았기 때문에 언뜻 보면 초가집처럼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죽은 사람의 살은 부패하기 때문에 더럽다고 여겨 시신을 조상님들이 모셔져 있는 선산에 바로 묻지 않고 일정 기간 초분 등의 가묘(假墓)에서 탈골을 시켰다. 초분에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육탈이 되면 좋은 날을 잡아 깨끗해진 뼈를 모아 영원히 쉴 음택(陰宅)으로 모셨다.

▲ 야트막한 돌담장에 의지해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금오도의 초분이다. 초분은 시신을 땅에 매장하지 않고 육탈을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임시 무덤이다.

초분은 초빈(草殯)·외빈(外殯)·소골장(掃骨葬)·초장(草葬), 구토롱 등으로 부르는데, 매년 짚으로 이엉과 용마름을 새로 갈아주기도 하고, 들짐승의 해코지 유무 등을 살펴보아야 하는 등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초분의 형태는 거의 비슷하나, 지역 또는 지형에 따라 초분 주위에 돌담을 두르기도 하고, ‘앉은 초분’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등 약간씩 다르게 나타난다. 앉은 초분은 현재 영광의 송이도에서 볼 수 있는 초분 형태로 육탈된 뼈를 보관할 목적으로 고깔 형태로 만든 것이다. 초분은 현재 영광 송이도, 영광 낙월도, 신안 도초도, 완도 청산도, 여수 금오도 등 주로 서남해안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오도에는 비렁길에 만들어 놓은 모형 초분 한 기가 있고, 남면 소재지에서 함구미 가는 길가 산기슭에 진짜 초분 한 기가 있다. 진짜 초분이 있는 자리는 금오도에서 계속 초분을 만들어 오던 곳으로, 현재 모셔진 분은 초분을 만들어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셨다고 한다. 평생 바다를 상대로 생사를 넘나들던 삶을 살아온 분이 죽어서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남아 있기를 원한 것이다. 죽어서까지 바라보길 원한 그 바다는 그토록 미련이 남아 떠나기 어려운 곳이었을까. 아니면 평생을 함께 했기에 죽어서도 같이 있고 싶은 곳이었을까.

이생진(李生珍, 1929 ~) 시인은 “술 좋아하는 사람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고, 그리운 사람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을 놔두었다”지만, 이승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주고, 살아생전 함께 한 바다와의 추억이 급작스레 단절되길 원하지 않았기에 금오도 사람들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할 ‘초분’을 오롯이 남겼는지도 모른다.

▲ 박종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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