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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김성 서각 명인의 '一到'[interview]예술가의 길 한국 전통서각
김현수 기자  |  newsman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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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8  17: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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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뉴스 김현수 기자]  ■ 예술가의 길 '서각'
남도 서각계의 거목으로 알려지고 있는 명인 김성(청암)은 서당을 운영하던 종갓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예와 목공을 하는 가족들에게서 글을 쓰는 법과 선(線)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무안 태생인 그는 월선리 현 예술인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3세 나이 초등학교 시절 남농 화가의 제자로 들어가 한국화를 공부하면서 그림의 소질을 보였다.

하지만 명인의 나이 20대 한국화를 공부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작스런 생각에 빠진다. “그림보다 좀 더 역동적이고, 특별한 게 없을 까?”하는 작품세계의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작가의 갈증은 그를 서각의 길로 자연스럽게 안내하고 그림과 서예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서각가의 출발을 부추긴다.

어린 시절 김성의 매형은 목수였었다. 그의 “가족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무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는 말에서 서각의 길은 더 짙게 예고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모든 과정이 그를 이끌어 20대 한국화를 배우던 젊은 청춘은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선다.

   
▲ 일월오공도
■ 운명


"서각을 위한 가르침을 받기위해 여러 곳을 찾아 다녔지만 모두 문전박대만 받았습니다 서각에 대한 책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독공으로 서각을 하게 된 청암의 오기와 무모한 도전은 운명처럼 시작된다. 무모한 20대 도전 자는 우리나라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젊은 김성은 목판이 발견되지 않은 당시 훈민정음 원본의 목판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알려주는 사람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무작정 말도 안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명인은 회고 한다.

무모한 도전의 여정에서 그는 "서각이란 결국 글의 원 뜻을 고스란히 옮기는 작업으로 한 치의 오차도 허락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어려운 전통서각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그는 "작품을 하나 만들기 위해 그 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만 최소한 3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전통서각의 길이다"고 설명한다. 작품으로 탄생하기 위해 한 겨울 베어진 나무는 2년에 기간을 견뎌야 한다. 자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두 번의 겨울을 견딘 나무는 다시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4계절을 보내야 한다. 목판의 변형을 막기 위한 과정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나무의 성질 때문이다.

오기와 열정으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명인은 국내 최초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3회나 완벽하게 목판 재현해낸 작가로 주목받게 된다.

   
 
■ 숨을 참고 그리는 선...명인에게 서각이란


그림과 글을 목판에 새기는 작업은 수 만 번 숨을 삼키는 작업의 연속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선을 이야기 한다.

"내 컨디션에 칼의 움직임이 틀려요 왜냐? 일반인들은 몰라요, 보통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전혀 그걸 느끼지 못하지만 작가는 그걸 알아요" 그래서 "서각의 선은 단 한 번의 숨으로 목판에 칼 질을 해야 합니다" 목판에 새겨진 선을 나누어 작업하게 되면 그 선이 이어진 흔적이 남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간에 숨을 쉬어버리면 거기서 틀어지니까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인은 목판에 선을 만드는 일도(一到)를 단전호흡을 익혔다. 전통서각의 예술은 많은 수련과 수행을 통해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나만이 아 여기서 여기까지는 오늘 한 것과 어제한 것 티가 나죠 그런데 일반사람들은 전혀 모르죠 왜냐 내 컨디션은 그날그날 내 기분과 내가 얼마나 정성을 들였느냐, 또 모든 것을 쏟았느냐에 따라 틀려요"그래서 목판에 새겨지는 일도(一到)는 숨소리도 들을 수 없다.

오직 혼이 담긴 손끝에 칼과 망치질로 한 땀씩 완성을 위한 작 업을 연속한다. 명인은 작업을 하기 전 수련과 수행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한 것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대작을 앞두고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과정이다.

특히, 모든 에너지와 혼을 담는 작업이 서각이라고 명인은 강조 한다. 큰 작품을 만드는 과정동안 모든 에너지와 혼을 집중하는 과정으로 그는 본인의 치아가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이다.

"6개월 동안 일절 고기를 안 먹고 궂은데 안가고 작업을 마무리 하면 이빨이 빠지고 고통을 느낍니다. 지금은 이빨이 하나도 남지 않아 틀니를 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목판에 그려지는 한 가닥의 선을 위해 집중하는 시간은 혼과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는 고단한 작업이다. 작가는 기운까지 담아야 한 작품의 서각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 김성 명인의 설명이다.

■ 버려야 얻는 것...완성을 위한 서체 만들기


   
▲ 명선
명인이 말하는 전통서각은 글을 쓴 사람의 마음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글을 쓴 작가의 한올 같은 의도까지 읽어서 목판에 새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학문과 예술의 천재인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님의 예술적 서체를 보고 배우는 점이 많다고 설명한다.

나만의 서법 개발을 위한 추사 선생님의 제주 유배시절 글에는 살이 많다는 느낌과 시간이 흐르면서 살이 글씨체에 다 빠지고 뼈만 남은 것 같은 글씨체에 매료 된 것이 명인의 심정이다.

글에 살이 많은 것은 마음의 욕심을 나타내는 형태로 해석하고 그 또한 자신도 욕심을 덜어낸 서체를 연구 하고 있다.

완성되지 않은 일명 청암체는 "어수룩하면서 어린아이가 쓴 글 같지만 힘이 있고, 글을 썼다는 형태보다 그렸다는 형태로 비추어 질 수 있는 그림 같은 글씨가 내가 지금까지 연구한 서체의 특징이라"고 설명 한다.

서법을 기본으로 두고 나만의 서법을 만들기 위해 왼손과 오른손 손을 바꿔보며 글 연습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한다.

좋은 서체를 만들기 위해 글에 대한 욕심도 많았던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서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현재 그의 완성되지 않은 글씨체는 욕심을 버리고 살을 빼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명인은 서체를 만들면서 욕심을 덜어내는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

   
▲ 홍매화
■ 명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


"내가 작업할 때는 항상 기도를 하고 좋은 기운만 담으려고 노력하고 내 모든 것을 쏟거든요, 작품을 가지고 가시는 분들이 그걸 느낍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도 작품들이 가져가서 집에 딱 걸었을 때 좋은 일 만 벌어진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미신과 같은 이야기지만 명인은 그렇게 믿고 있다.

명인은 “저는 팬들을 위해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정성을 쏟아서 작품을 해주는 것 소비자를 위해서 이게 작가가 해야 할 일이고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작가의 손을 떠나는 작품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의 철학이고 삶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가족에게 짐이라고 느끼던 세월


명인은 무안군 월선리 현 예술인 마을에서 태어나 무안과 목포, 강진 등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명인으로 인정받은 김성(청암)은 현재 낙안읍성에 터를 잡았다. 방문객들에게 서각을 소개하고 체험하는 일을 돕고 있다.

초가집에서 취재진을 반겨준 명인은 그래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작품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감사하고 있다.

명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작가의 인생은 자신에게 행복한 세월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가로써 경제적으로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지난 세월이 부끄럽다. 부인과 자녀에게는 남편과 아버지라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의 후회도 가슴에 삼키고 살아간다. 그래도 나는 서각의 명인이다.

   
▲ 해인사 팔만대장경 일부 재현 작품
■ 한국 전통서각의 자부심


목판을 이용하는 전통서각은 우리나라가 그시초다. 전통서각에는 나무 판재에 글을 새기고 종이에 인쇄해 책을 만들어 공급한 조상들의 지혜와 위대함이 담겨져 있다. 글을 베껴 쓰는 시대에서 8세기 706년 전후 목판으로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 라니경의 발견이다. 지난 1966년 불국사 석가탑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경전은 현존하는 목판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 126-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에 따른 한국 의 목판인쇄는 선구자임을 자부하고 있다.

이후 우리나라 목판인쇄는 한글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조선 전기인 1446년 (세종20년) 제작된 문헌으로 알려지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은 1962년 12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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