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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천 고광순 의병장 기념관을 찾아서6월 두번째 이야기
변광렬 기자  |  qusfu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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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22  17: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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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하여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자 통합뉴스는 월 2회 현장 탐방기를 엮어갑니다.(2012.06.22.)<편집자 주>  

나라를 구한 삶을 살았던 조상의 후손은 필시 그가 정의롭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을 때 괴로워했다. 그리고 나라가 몰락할 때 떨쳐 일어나 역사를 만들었다. 충절의 혈통은 역사와 시대를 뛰어넘어 유전되어 온다.

전남의 명문가라 꼽을 수 있는 가문으로 전남 담양 창평 지역의 역사에는 의병장 고경명 장군이 있다. 그리고 그 후손들 또한 충절과 민족의 정신을 이어가는 진정한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 고경명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분이다. 그러나 그의 후손 고광순이 구한말 일본에 항거해 의병을 일으키고 장렬히 전사함을 아는 이는 적을 것이다.

고광순은 1895년 을미사변때 ‘가국지수(집안과 국가의 원수)를 갚자’라는 기치를 걸고 거병한 후 10년간을 울분을 삼키며 이후 1905년 을사늑약 때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아 호남 의병장이 되어 ‘불원복(不遠復)’의 깃발을 들었다.

   
▲ 고광순 의병대의 불원복태극기 <출처 독립기념관>
구한말 의병장 최익현의 패전 이후 고광순은 의병을 충원하고 결속을 다진다.

매천 황현에게 격문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하고 구례의 연곡사에서 장기항전을 준비하지만, 일본군의 연곡사 복멸작전으로 연곡사와 주변의 절은 불타고 고광순은 60세의 노구를 이끌고 싸우다 전사한다. 

해방 후, 1958년 구례사람들은 고광순의 업적을 잊지 않고 연곡사 한켠, 그의 무덤에 순절비를 세운다.

6월에 태양아래 샘물 같은 바람을 부채질 하는 푸른 산들로 둘러진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있는 포의사를 찾았다.

포의사는 의병장 녹천 고광순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포의사 기념관 앞에는 마을과 너른 들녘이 있으며, 뒤로는 산세가 이어져 있어, 그 산하는 금성산성을 지나 지리산까지 이어져 간다.

100년 전 그들은 나라의 위태로움을 알고 과감하게 이 산을 올랐을 것이며, 저 멀리 연곡사에서까지 항일의 목청을 드높였을 것이다. 의병들이 게릴라식 전투로 왜놈들을 섬멸하자 노략자인 왜놈들은 그의 종가에 불을 질렀다고 전해진다.

   
▲ 담양 창평면 유천리의 고광순 기념관
고광순은 왜놈들과의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는 격문을 황매천에게 부탁하지만이 황매천은 “격문이 있고 없고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노력 여하에 달렸을 뿐이다”라며 거절해 버린다. 매천은 그 거절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매천은 약전에 기록하기를> 

                      심부름 온 사람이 야속하다며 풀이 죽어 돌아갔다.

          곰곰이 생각한 후에 결국 나는 격문 하나를 썼다.

          그리고 공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렸는데 끝내 오지 않았다.

          녹천은 필시 나를 외적이 두려워 격문도 못쓰는 놈이니

          족히 더불어 논의할 놈이 못된다고 유감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도올 번역]

매천은 고광순의 전사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연곡사로 향하지만 깨진 기왓장과 조약돌이 쌓여있는데 불탄재는 아직 불기가 있었다.

공의 시신을 덮은 개미뚝만한 초분을 보자 매천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와 통곡을 하였고, 그 밤으로 사람을 모아 흙을 돋우어 고광순의 무덤을 만들었다.

연곡의 천개봉우리마다 숲은 울창한데

남김없이 목숨바쳐 싸우는 열사들은 있어도

나라는 일그러지고야 마는구나.

전마는 흩어져 논두렁에 누워있고

까마귀 때만이 나무그늘 사이로 내려와 앉는다.

나같이 글만 아는 선비 끝내 무엇에 쓸 것인가.

임란부터 외적에 나라를 지킨 명문가에 감히 따를 수 없다

홀로 서풍을 맞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새로 만든 무덤은 높이 솓았으나 옆에 핀 들국화는 누었도다.

                                                [도올 번역]

 

이날 필자가 찾은 포의사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쇠사슬로 들어오면 안 된다고 단단히 열쇠까지 채워져 있었다.

포의사를 짓고 확장하는데 수십억원의 세금을 쏟아 부어 지어놨다는데 들어가지도 못하게 만든 담장..이 담장은 누구를 위한 담장이란 말인가.

항일 멸사보국의 정신이 저 담장 너머로 넘쳐나는데 가슴만 안타까울 뿐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일에 포의사에서 고광순 의병장의 영정 한번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변광렬 기자  qusfu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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