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일본의 센다이(仙臺)시는 건립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역사 사료를 정리하던 중, 센다이 번(藩)의 다이묘(大名)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가신인 하세쿠라 쓰네나가(支倉常長, 1571-1622)가 유럽에서 체류하던 동안의 행적을 추적,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스페인의 세비야 시에 이와 관련된 정보를 요청한 결과 전혀 예상치 않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코리아 델 리오(Coria del Rio)는 세비야에서 과달키빌 강변을 따라 하류로 약 12km 떨어진 조그마한 포구였으나, 1960년대에 세비야의 베드 타운으로서 급성장하여, 현재 인구가 약 3만명에 이르는데, 특이한 것은 주민 중에 약700명이 Japón(일본)이라는 성(姓)을 가지고 있어서, 이곳에 오래 전부터 일본인의 후손들이 집단으로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하세쿠라 쓰네나가의 동상

스페인 사람들은 부모의 성을 모두 물려받아 성이 둘이므로, 중간에 모계로 갈라진 후손도 성이 계승되어 조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테 마사무네는 1613년10월 막부(幕府)의 승인을 받고 가신 하세쿠라 쓰네나가와 프란치스코회 선교사 루이스 소텔로(Luis Sotelo)가 이끄는 '게이초(慶長)사절'을 유럽에 파견하는데, 이들의 임무는 스페인과 외교통상 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여 날로 늘어나는 일본의 천주교 신자를 위해 선교사의 파견을 요청하여 카톨릭의 교세를 확장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일행은 모두 180여명으로 수행원(사무라이)22명, 상인, 하인, 선원 합하여 일본인 120명 외에 스페인, 포르투갈인 4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500톤급의 갈레온선(船) 'San Juan Bautista'호에 승선하여 태평양을 횡단하여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 지금의 멕시코)로 향한다.

3개월의 항해 끝에 1614년 1월 아카풀코 항에 도착한 일행은 부왕(副王)의 환대를 받으며 6개월 가량 머무는데, 일행 중 63명이 천주교도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이어서 하세쿠라는 30명의 수행원과 함께 대서양의 항구 베라크루스로 이동하여 스페인을 향한 항해를 계속한다.

일행은 중간에 쿠바의 아바나 항에 잠시 기착한 후에 1614년10월에 세비야 근처의 코리아 델 리오에 도착하여, 그 후 약 2년간 유럽에 체류한다.

1615년 1월 사절단은 마드리드에서 펠리페 3세에게 외교통상 관계 수립을 원하는 다테 마사무네의 친서를 전달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로마에서 교황 바오로5세를 알현하여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는 서신을 전달하여 교황의 승낙을 얻는다.

바르셀로나에서 이탈리아를 향해 항해하던 도중에는 폭퐁우를 피하여 프랑스 남쪽의 항구 셍 트로페스에서 지방 귀족의 영접을 받으며 잠시 머무는데, 이것이 일본과 프랑스가 서로 만나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한다.

또 하세쿠라는 마드리드에서 Felipe Francisco Hasekura로 세례를 받으며, 로마에서는 명예 시민의 자격을 얻어 상당히 정중한 예우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들이 일본을 떠난 후에 본국의 정세는 급격하게 변하여, 막부는 1614년 기독교를 금지하여 기독교도에게 가혹한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였고, 통상도 단절하는 쇄국정책을 취하게 되는데, 이는 유럽에도 알려져 이탈리아에서 마드리드로 돌아온 사절단이 1616년4월 국왕을 다시 만나나 스페인은 조약 체결을 거부한다. 

사절단은 1616년6월 귀국길에 오르나 5-10명으로 추정되는 수행원은 코리아 델 리오에 정착하여 스페인에 귀화하는데, 그 당시 흔한 풍습대로 자신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Japón을 성(姓)으로 택한다. 

나머지 사절단은 귀국길에 누에바 에스파냐와 필리핀에서 한동안 체류한 후 1620년8월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7년에 걸친 여행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끝나는데, 하세쿠라는 이후 실의에 빠져 1622년 병사하였다. 

다음 차례의 일본 외교 사절단은 250년을 기다린 후 1862년에야 다시 유럽에 도착하게 된다. 

▲ 사진 기념 식수하는 나루히토

오랫동안 역사에서도 잊혀진 '게이초(慶長) 사절'과 이들 후손의 존재가 알려지자, 1992년 세비야 국제박람회를 계기로 스페인 주재 일본대사관이 후손들의 모임을 주선한 이후 이들은 연례 행사의 모임을 가지며, 센다이 시는 코리아 델 리오에 하세쿠라의 동상을 건립하여 지금은 일본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게이초 사절' 400주년을 맞아 최근에 스페인을 공식 방문한 나루히토(德仁) 일본 왕세자는 하세쿠라 동상 옆에 벚나무를 기념 식수하였다.

스페인 김정현 기자  통합뉴스

<저작권자 © 통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