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르투갈 국회는 15세기 말에 종교적인 탄압을 받아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유태인의 후손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앞서 스페인 법무부는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태인의 후손에게 자동적으로 국적을 부여하기로 하고 구체적 세부 절차를 올해 안에 마련하기로 하였다.

1492년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보루인 그라나다가 함락되면서 800년 이상 계속된 이슬람의 지배가 끝나고 이베리아 반도 전역은 기독교 왕국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속하게 된다.

같은 해 '알함브라 칙령' 이 발효되어 유태인은 스페인에서 계속 살려면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아니면 3개월 이내에 스페인을 떠날 것을 명령하는데, 추방 시 금, 은과 보석의 소지를 금지하였다고 한다.

'세파르디(sefardí)'는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하던 유태인과 그 후손을 칭하는 말로서 히브리어로 스페인을 뜻하며, 이 칙령으로 추방된 세파르디의 숫자는 약 20만명으로 추산되나, 13만에서 80만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주장이 있어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많은 세파르디가 칙령을 피해 포르투갈로 피난하지만 1497년 스페인의 압력으로 기독교로 개종, 아니면 추방의 선택을 강요받아 대부분 개종을 선택한다.

여기에 이어지는 잔인한 종교재판으로 이를 피해 다시 떠나야만 하는데, 15세기 말에서 16세기에 걸쳐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세파르디는 스페인에서 추방된 12만명과 포르투갈에 거주하던 5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중 일부 그룹은 종교적 박해가 없는 네델란드나 신대륙의 브라질을 향해 떠나지만, 상당수는 오늘날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서 다시 유태교로 개종하고 세파르디 공동체에 합류한다.

암스테르담에 이주한 그룹의 일부는 네델란드의 황금시기인 17세기에 신대륙 식민지 경영에도 참여하여 뉴 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에도 진출하게 된다.

스페인에서 추방된 세파르디 중 일부는 북아프리카 또는 남부 프랑스로 흩어지지만, 대부분의 난민을 오스만 제국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술탄 바에지드 2세는 해군 함대를 동원하여 세파르디를 수송하였고, 도착하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항구에서 이들을 직접 마중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발칸 반도의 주요 도시인 콘스탄티노플, 살로니카(테살로니카), 사라예보, 벨그라드등에 정착해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는데, 포르투갈로 피난하였던 일행도 합류하여 공동체는 점점 번영한다.

살로니카는 1519년에 세파르디의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56%에 달하여 유태인이 다수를 차지한 도시로 변하였고 그 후에도 계속 증가하여 '발칸의 예루살렘'이라 불리게 된다.

'라디노(ladino)'는 중세 스페인어에 히브리어가 가미된 말인데 오스만 제국의 세파르디 사회에서 그동안 원형을 유지하며 사용되어 왔으며, 현대 스페인어와 원활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또 이들은 스페인에서 조상들이 부르던 노래, 음악을 지금까지 전승하고 있으며, 추방 당시 살던 집의 열쇠를 대를 물려가며 간직하고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자신들의 뿌리가 스페인에 있음을 잊지 않아 다른 유태인과는 크게 구별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오스만 제국이 1912년 발칸 전쟁에서 패하여 유럽 내의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고, 이어서 1차대전에서도 패하자 발칸 반도의 세파르디 공동체는 급속하게 파괴되는데, 공동체 규모가 가장 큰 살로니카에서 두드러진다.

살로니카의 세파르디는 2차대전 이전에 상당수가 프랑스나 미국으로 이주하고 약 5만명이 잔류하였는데, 95% 이상이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희생되어 '발칸의 예루살렘'은 영원히 자취를 감춘다.

오늘날 세파르디의 인구는 150-200만명으로 전체 유태인 인구의 18%로 추정하는데, 이스라엘에 약 70만, 프랑스에는 31-35만이 거주하며, 그 외에 미국, 아르헨티다, 브라질, 멕시코, 터키, 모로코 등 세계 각처에 분산되어 있고, 라디노를 구사하는 인구는 약 25만명으로 상당수가 이스라엘에 거주한다.

외국인이 스페인 국적 취득을 하려면 스페인에서 일정 기간 이상 거주를 하거나 극히 예외적으로 귀화 허가증에 의하여 국적이 부여되는데, 세파르디의 경우는 거주지에 상관없이 조상이 스페인에서 거주했던 사실이 입증되면 귀화 허가증을 발급하고 이중 국적도 허용한다고 한다.

언어, 문화의 정체성이 스페인에 있으면서도, 지난 500년간 '조국이 없는 스페인인'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이번의 조치는 만시지탄이 있지만 국가가 해야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사죄의 표시이며,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유태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거주한 흔적은 기원전으로도 거슬러 올라가지만, 기원 1세기 로마에 의해 유태 민족이 각처로 분산 될 때 상당수가 이베리아 반도를 택하여 전 지역에 걸쳐 정착을 시작하였고, 이슬람이 지배하는 800년 동안 그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고 한다.

영국의 라이스터 대학이 주도하고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스라엘로 구성된 국제 조사팀이 스페인, 포르투갈인의 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유태인의 형질이 20%를 차지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스페인 김정현 기자  통합뉴스

<저작권자 © 통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