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김정현 기자 ] 세계 2차 대전 당시 스페인이 독일 측에 가담하여 참전할 가능성에 위협을 느낀 영국의 윈스턴 처칠수상은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측근인 군의 고급 지휘관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살포하여 참전을 저지한 역사적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에 영국 정부가 기밀을 해제한 첩보기관 M16의 오래된 문건을 통해서 알려진 이 사실은, 스페인과 영국의 역사가들 사이에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구체적으로 전모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40년 6월 당시 스페인 주재 영국 대사 사무엘 호어는 본국에 암호 전문을 보내 스페인이 중립을 깨고 독일 측에 가담하여 참전할 위험성을 경고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뇌물 작전'의 착수금으로 1백만 달러의 송금을 요청하면서, 상황이 아주 급해 자세한 설명을 할 시간이 없으니 의문이 있으면 수상인 윈스턴 처칠과 직접 상의할 것을 덧붙인다.

처칠 수상은 전문 사본에 'Yes indeed'라고 서명하여 뇌물 작전을 승인하였고,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최소한 1천4백만 달러(현재 가치로 2억 달러 규모)를 뉴욕에 있는 스위스 은행의 계좌에서 마드리드에 있는 영국 대사관으로 송금하였다.

돈은 이 작전의 핵심 인물인 후안 마르시(Juan March, 1880-1962)의 손을 빌려 30명의 스페인 군 고급 지휘관, 선박 업자, 첩보원들에게 전달되며, 그 중에는 해군의 고급 장교이자 독재자의 친형인 니콜라스 프랑코도 포함된다.

은행가이자 실업가인 후안 마르시는 당시 스페인 제일의 갑부인데 세계1차 대전 중에는 영국 측의 첩자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담배 밀수로 거액의 부를 축적할 기틀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 사진 프랑코와 히틀러, 1940년

그는 또 독재자 프랑코가 주도한 쿠데타에 자금을 지원하여 '프랑코 파' 장군들과는 친분이 두터운 인물로서, 영국에서 받은 돈을 자신이 주는 '촌지'로 포장하여 자연스럽게 뇌물을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대전에 스페인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고, 실제로는 나치 독일과 참전 조건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1940년 여름 양쪽 의견 차이가 너무 심하여 실무진들은 히틀러와 프랑코의 회동을 주선하는데, 뇌물 작전이 시작된 직후인 1940년 10월 23일, 스페인-프랑스의 한 국경 도시 옌다예(Hendaye)에서 희대의 독재자 둘이 9시간 동안의 회합을 하였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만을 재확인하는데 그친다.

뇌물 작전의 기안자는 알란 힐가드(Alan Hillgarth, 1899-1978)로서 스페인 주재 영국 대사관의 해군 무관이며, 첩보 조직의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나중에 많은 첩보 소설의 모델이 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1932년부터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에 거주하면서 첩보원이자 명예 영사의 역할을 하던 중, 스페인 내전(1936-1939)이 일어나자 영국민들을 소개하는 책임을 훌륭히 수행하면서 많은 인명을 구해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고, 소개 도중에 내전 양측의 지휘관들과 협상을 하면서 그들과도 친하게 된다.

후안 마르시는 자신의 고향인 마요르카에 은행(Banco Marsh)를 설립하여 운영하던 중 알란 힐가드와 친할 수 있었고, 윈스턴 처칠은 전쟁 발발 이전에 마요르카에서 휴가를 보내는 기회에 힐가드를 알게 되어, 뇌물 작전의 기본 설계도는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마요르카 섬에서 이미 작성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1941년 미국이 뉴욕의 계좌를 동결시켜 뇌물 작전은 위기를 맞았으나, 처칠 수상의 적극적인 수습책으로 위기를 넘기는데, 동결의 원인은 후안 마르시가 프랑코 진영에 쿠데타 자금을 지원한 전력과 나치 독일의 고위층과도 친분 관계를 유지하는 이중첩자일 가능성이라고 한다.

뇌물 작전은 1942년11월 영,미 연합군이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나치 독일의 패퇴가 시작되면서 끝을 맺었다.

스페인 김정현 기자  통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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