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뉴스는 지난 교수신문에 기획연재되었던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의 '섬 이야기'를 통해 섬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겨진 흔적을 돌아보는 취지로 이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보길도 예송리 앞 몽돌해수욕장

섬과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다에서의 예기치 않은 사고와 죽음은 숙명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다도해 사람들은 마을공동체에서 무주고혼을 위령하는 제사를 지내왔다. 마을에 따라서는 죽은이들의 명단을 보관하였다가 제사 때마다 꺼내서 기억하기도 하고, 굳이 명단이 없더라도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행할 때 수사자(水死者)가 있거나 임자없는 조상이 있는 집에서 제상을 준비하여 위령하는 의례를 행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의례전승이 약화되면서 소멸되거나 중단되었으나, 수사자나 무주고혼을 위한 공동체 제사는 다도해역을 중심으로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에서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수사자와 무주고혼을 위령하는 제사는 헌식이나 거리제의 이름으로 거행되는데, 현재 보길도와 노화도를 중심으로 한 완도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보길도 예송리의 경우 매년 정월 초하루 아침에 바닷가에 헌식상을 차려놓고 무주고혼에 대한 제사를 성대하게 행하고 있다. 예송리는 완도군 보길면에 속한 마을로서 100여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큰 마을이다. 전복양식을 비롯한 어업소득이 증가하면서 20~30대의 청년층이 30여명 정도 거주하고 있고, 마을 제사도 청장년층에서 적극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예송리의 마을제사는 섣달그믐에서 정월 초하루까지 이틀에 걸쳐 진행한다. 섣달그믐에 당제와 해신제를 진행하고, 정월 초하루에 바닷가에서 헌식굿을 행한다. 당제는 당할아버지ㆍ당할머니ㆍ산신을 위한 제사고, 해신제는 바다신에 대한 제사다. 헌식굿은 바다에서 죽은 수사자나 임자없는 조상들을 대상으로 한 제사다.

섣달그믐이 되면 밤 7시 무렵에 당제를 지낸다. 당주와 집사가 당신과 산신에 대한 제상을 진설하여 제사를 지내고, 밤 11시 무렵이 되면 해신제 제관 부부가 마을 해변 우슬(방풍림)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튿날인 정월 초하루 설날 아침이 되면 친지를 돌며 세배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 마을회관에 모여서 군고(농악)를 칠 준비를 한다.

군고꾼들은 마을회관에서 시작해 당과 공동우물을 거쳐 몽돌해수욕장이 있는 해안가로 이동한다. 군고꾼들이 시끌벅적하게 마을을 돌아 해안가에 도착하면, 가정집에서는 집집마다 제상을 마련하여 바닷가에 일렬로 길게 진설한다. 당제와 해신제 등은 제관들만 참석하는 엄격한 제사인 반면, 바닷가에서 행하는 헌식굿은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군고를 치고 춤을 추며 행하는 축제적 행사로 펼쳐진다. 군고꾼들이 길게 늘어선 제상 주위를 돌면서 흥겨운 굿판을 만들면, 군고패의 대장격인 포수가 가운데로 나와 무주고혼을 위령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축원을 한다. 군고(농악)로서 제사를 행하고 축제적 연희를 베풀어 죽은이를 위령하는 것이다.

▲ 무주고혼을 위령하고 기억하는 바다제사 '헌식'

이러한 헌식이나 거리제는 무주고혼을 위령하는 제사라는 점에서 망제, 무후제, 여제, 수륙재, 거리굿 등과 통한다. 수륙재와 여제(厲祭)는 국가에서 주관하여 설행하던 제사다. 헌식의례가 전통적인 여제나 망제, 수륙재 등과 연관되지만, 서남해 일대에서 강화되어 나타나는 것은 다도해의 생활조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남해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섬이 모여있는 다도해지역이다. 다도해가 전제가 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섬과 섬·섬과 내륙이 끊임없이 교류를 하면서 소통을 하고,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생을 유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농토가 부족한 도서해안지역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것인데, 이것은 증가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섬과 섬ㆍ섬과 내륙을 잇는 바닷길이 생존의 길이자 죽음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길의 이용은 무주고혼을 위령하는 헌식의례를 이해하는 중요한 전거로 작용한다. 바닷길을 통한 소통은 언제든지 죽음에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었다. 과거부터 서남해 도서들은 중국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지리적인 특성상 많은 표류인들이 표착해오는 지역이었다. 신안 우이도에서 홍어를 팔기 위해 영산포로 이동하던 문순득이 풍랑으로 표류하여 동아시아를 돌아서 되돌아 왔던 사정은, 바다라는 공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곳이면서 쉽게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곳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근 해남에서 미황사의 절걸립패가 다도해의 섬 곳곳을 다니면서 걸궁을 하다가 청산도를 가는 도중에 침몰하여 전몰했다는 일화는 바닷길의 유용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헌식의례는 가정별로 제상을 준비해서 나오기 때문에 집안의 조상이나 수사자 등의 개인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의례를 행하는 제관이나 주민들은 수사자 개인에 대한 의례로 생각하지 않고 무주고혼과 마을 공로자들에 대한 의례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헌식에서 개인의례의 집합은 일종의 마을 단위 수륙재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바다에서의 죽음은 개인을 넘어서서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되었고, 그로 인해 헌식 의례가 무주고혼에 대한 집단적 해원의식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헌식은 제사를 마치고 잡귀를 풀어먹이는 것인데, 그 헌식을 마을이나 가정과 직접적으로 관련시켜 공로자나 임자 없는 조상, 수사자 등으로 대접하는 것은 다도해의 도서적 환경에 적응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건에 대한 기억과 잊혀짐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전국민을 비통하게 했던 슬픈 죽음은 불과 100일도 되지 않아서 잊혀져가고 있다. 처음에는 온통 세월호 소식에 귀를 귀울이고 함께 슬퍼하며 대책을 논의했지만, 이제는 과거에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으로 묻어두려고 한다. 그러나 세월호의 슬픈 죽음은 다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기억해야만 한다. 다도해 사람들이 행하는 헌식과 거리제는 바다에서 죽은사람들과 무주고혼을 위령하는 것이면서 그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진도의 주민들과 예술인들이 혼건짐과 씻김을 준비하고 있고, 곳곳에서 위령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아마도 진도의 예술인들은 세월호의 영혼을 씻기고 위로하는 일은 매년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서남해 사람들이 죽은이를 기억하고 기리는 방식이고 전통이기 때문이다.

송기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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