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뉴스는 지난 교수신문에 기획연재되었던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의 '섬 이야기'를 통해 섬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겨진 흔적을 돌아보는 취지로 이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연륙 뿌리치고 섬으로 남은 섬 여수시는 매일 1개씩 방문해도 1년이 꼬박 걸리는 365개의 섬을 가지고 있다. 이들 여수의 섬들은 크게 3개의 면으로 구획되어 있다. 백야도를 중심으로 여수에 비교적 가까운 섬들로 묶여진 화정면, 금오도를 중심으로 돌산도 남쪽에 늘어서 있어 ‘금오열도’라고도 불리는 남면, 그리고 거문도를 중심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들로 엮어진 삼산면이 그것이다. 여수시는 화정면과 남면의 인근 섬들을 육지와 연결하여 여수만을 에워싸는 ‘다리박물관’의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에 있는데, 금오도는 육지와 연결되는 ‘연륙(連陸)’의 유혹을 뿌리치고, 대신 남동쪽에 위치한 ‘안도’와 다리로 연결하는 ‘연도(連島)’만을 선택하여 섬으로 남기로 했다. 탁월한 선택이다.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섬이 아니다. 배로 건너야만 섬이다.

금오도는 여수에서는 돌산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크고, 우리나라 전체 섬 중에서는 21번째로 큰 섬이다. 북서에서 남동으로 뻗어 내려 길쭉한 형상을 띠고 있다. 금오도의 남동쪽 끝에는 금오도의 7분의1 밖에 안되는 작은 섬 안도가 이어질 듯 끊어져 있는데, 두 섬은 2010년에 완성된 360m 길이의 안도대교로 이어져서 서북-동남향으로 더욱 길쭉해진 하나의 섬으로 변신했다.

선녀가 내려온 아름다운 섬 금오도는 원래 숲이 우거져 있어 검게 보인다 하여 ‘거무섬’이라 불리던 것이 한 때는 ‘거마도(巨磨島)’로 표기되기도 하다가, 언제부턴가 ‘금오도(金鰲島)’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따라서 금오도의 정체성은 ‘금오도의 뜻=황금 자라 섬’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거무섬의 뜻=숲이 진한 섬’, 곧 ‘자연이 아름다운 섬’에서 찾아야 한다.

선녀가 내려왔다는 전설은 금오도의 이러한 이미지와 부합한다. 어느 날 선녀 넷이 금오도에 내려와 놀았다. 세 선녀는 하늘로 올라갔지만 한 선녀는 금오도 청년에 반해 연을 맺어 이곳에 머물렀다. 이에 노한 옥황상제는 그 선녀를 금오도 동쪽 끝의 옥녀봉으로, 선녀가 사랑한 청년은 서쪽 끝의 신랑봉으로 만들어 버렸다. 영원히 상봉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동서 양편으로 떨어뜨려 놓았다는 것이다.

작은 갯돌해수욕장이 아름다운 포구마을 직포(織浦)에는 선녀가 내려와 베를 짰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한때 사람 거주, 출입금지 돼 금오도는 조선시대 국가의 재목(황장목)을 키우는 ‘봉산(封山)’으로 지정됐다. 하여 사람의 거주는 물론 출입 자체가 금지됐다. 나라의 재목이 될 소나무 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금오도의 아름드리 소나무는 임란 직후 여수 진남관을 세울 때나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등에 이용되었다 한다. 고종이 명성황후가 기거하던 명례궁에 금오도를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러고 보면 ‘숲이 진한 섬’이라는 금오도의 정체성은 이러한 ‘봉산’의 역사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금오도에 사람을 금했다지만, 육지에서 생계가 어려운 자들이 몰래 숨어들어가는 것까지 다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숨을 죽이며 금오도에서 땅을 일구고 물고기며 해조류를 거두어 연명해 갔다. 그러던 중 1885년에 봉산이 해제되면서, 금오도에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봉산 해제 후 금오도에 처음 공식적으로 입도한 자는 관의 포수였던 박씨인 것으로 전해온다. 그는 1885년 섬의 서쪽 포구인 두포 마을에 정착했다 한다. 1985년에 ‘금오도 개척 백주년 기념비’가 두포 마을에 건립된 것은 이 때문이다. 두포 마을의 옛 이름 ‘초포(初浦)’는 사람이 처음 정착한 포구라는 의미의 ‘첫개’였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비렁'은 '벼랑'의 여수 사투리

금오도는 ‘비렁길’로 유명하다. ‘비렁길’은 깎아지른 벼랑이 발달한 금오도 서부의 해안절벽을 따라 ‘걷는길’을 조성하여 붙인 이름이다. ‘비렁’은 ‘벼랑’의 여수 사투리다. 제주도의 ‘올레길’이 전국적으로 큰 붐을 일으키던 차에, 금오도에 그보다 더 멋드러진 비렁길이 조성된 것이다.

금오도 비렁길은 2010년 ‘함구미-두포’로 이어지는 1구간(5㎞)이 처음 개방됐다. 이후 세계여수엑스포를 맞은 2012년에 ‘직포-학동-심포-장지’로 연장되어 총 18.5㎞에 달하는 5개 구간의 비렁길로 확대되었다. 비렁길은 금오도 특유의 아름다운 숲과 시원한 바다가 어우러져 ‘자연이 아름다운 섬’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012년 7월에 행안부로부터 ‘우리마을 녹색길 베스트10’에 선정되기도 했다.

비렁길에서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것이 있다. 1구간에서 산허리를 두르며 끝없이 나있는 돌담이다. 현지인의 가르침에 의하면 봉산 해제 이후에 금오도에 들어와 살게된 사람들이 산허리에 힘들게 개척한 농지의 경작물을 맷돼지가 출몰하여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조성한 것이라 한다. 산허리를 일궈 농지를 만들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그 기나긴 돌담을 쌓은 금오도 사람들의 옹골찬 삶의 노고가 여실히 느껴져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명품 찻길, 동부 ‘물목길’
이처럼 금오도의 서부 해안에 명품 ‘걷는길’(트랭킹코스)이 있다면, 북동부 해안에는 명품 ‘찻길’(드라이브코스 또는 하이킹코스)이 있다. 서부 해안의 걷는길은 ‘비렁길’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동북부 해안의 찻길도 이에 못지않은 멋진 이름이 작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선 이 길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인상적인 섬 수항도의 옛 이름인 ‘물목섬’을 따서 ‘물목길’이라 칭해 두자. 이 길의 공식 명칭은 유송마을 이름을 따서 지은 863번 ‘유송로’다.

함구미 마을에서 ‘물목길’을 따라 동으로 달리다보면 송고를 거쳐 여천에 이른다. 이 구간에서는 북으로 돌산도와 화정면 및 남면의 크고 작은 섬들이 겹치면서 연출하는 멋진 ‘바다호수’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여천에서 방향을 바꾸어 동부 해안도로에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 남으로 달리다보면 ‘유포(대유, 소유)-우학(면소재지)-심포’ 등의 여러 마을을 거쳐 장지에 이른다. 이 구간에서는 동으로 태평양으로 통하는 망망대해가 시원스레 눈에 들어온다. 그 바다 위에 간간이 뿌려져 있는 수항도와 몇 개의 바위섬들(가리여, 문여 등)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대양의 단조로움을 덜어준다.

함구미는 ‘비렁길’과 ‘물목길’의 분기점이다. 함구미에서 헤어진 비렁길과 물목길은 심포 마을(비렁길 4구간 종점, 5구간 시점)에서 잠시 만났다가 다시 헤어져 장지 마을에서 다시 만난다. 지금은 장지에서 비렁길은 끝나 있지만, 물목길은 계속되어 안도대교를 건너 안도에까지 이른다. 추후 안도에 비렁길 6구간과 7구간을 개설할 계획이 서있다 하니, 비렁길과 물목길이 안도에서 재회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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