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뉴스는 지난 교수신문에 기획연재되었던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의 '섬 이야기'를 통해 섬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겨진 흔적을 돌아보는 취지로 이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날씨는 화창했다. 유달산을 뒤로 하고 차를 달려 목포대교를 건너 고하도로 들어섰다. 고하도는 "유달산과 같은 높은 산 아래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이후 선박을 건조했었다. 지금은 모충각을 지어 장군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장군은 해로로 갔을 길을 나는 육로를 통해 장군의 자취를 찾아 길을 재촉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우수영국민광광지. 진도대교 아래쪽 바다가 그 유명한 명량해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곳에서 장군은 13척의 배로 130척의 적선을 물리쳤다고 하는데 이는 세계 해전 역사상 전례가 없다고 한다. 바다는 과거의 핏빛 역사를 담고 여전히 포효하며 흐르고 있었으며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장군의 어록을 새긴 비석만이 묵묵히 그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을 것이다” 장군은 호남을 지키지 못하면 국가가 위험해 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목숨을 걸고 이 바다를 지켰던 것이다.

넓은 농경지로 군량미 풍부했을 것
다시 1시간을 달려 강진 마량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고금도로 들어섰다. 얼마 가지 않아 넓게 펼쳐진 농경지가 드러났다. "아, 장군이 고금도로 본영을 옮긴 이유가 군사들을 먹일 군량미가 풍부했기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금도에는 '사람보다 소가 더 많다'는 얘기가 있는데 농경지가 넓어 농사를 많이 짓는다는 뜻으로 전체 완도에서 수확되는 양보다 고금도에서 수확하는 양이 더 많다고 한다. 고금도의 산들은 둥글둥글하고 그 사이에 논과 밭들이 정겹게 조화를 이루어 매우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고금도 사람들은 자신들을 ‘반서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조선시대 귀향 온 사람이 많아 지식이 서울과 진배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인 김노경과 완도군을 설립하는데 공헌이 큰 이도재 선생이 있는데 지금도 이들 스승을 모시는 오원사가 전하고 있다. 1886년 이도재 선생은 현지민들에게 고구마재배법을 가르쳐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하는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동쪽의 고금도에서 많이 심기 때문에 고구마를 고금이라 부른다(我東以盛於古今島 稱古今伊)”는 말까지 있다.

먼저 충무사가 있는 묘당도(廟堂島)로 향하였다. 묘당도는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있는 곳'이라 하여 묘당도라고 한다. 원래 섬이었는데 지금은 간척을 하여 고금도에 연결되어 있어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현재의 충무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사연이 있었다. 정유재란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왜군은 귀국하기 위해 남쪽으로 몰려 들었고 장군은 적들의 퇴로를 봉쇄하기 위해 고금도에 본영을 세웠다. 중국의 진린(陣璘) 장군도 500척의 배를 이끌고 고금도로 왔고, 이들은 관왕묘(關王廟)를 짓고 승전을 기원하였는데 이것이 관왕묘가 처음 세워지게 된 원인이다. 이후 현종 병오년(1666년)에 절도사 유비언의 제안에 따라 중수를 하고 정전에는 관왕(關王)을 좌무(左廡)에는 진린과 이순신 장군을 모시게 되었다. 1791년 정조는 탄보묘(誕報廟)라는 편액을 내렸으며 등자룡도 배향하기 시작했다.

1931년 6월 1일 이광수는 관왕묘를 찾았을 때 "정전에는 관우의 소상이 있고 동무에는 진린과 등자룡이 모셔져 있으며 서무에 충무공의 위패가 있다”고 기록하고 이는 "장군이 관우의 신하가 된 셈이며 진린이나 등자룡보다 더 낮은 위치에 처한 것은 조선인의 노예근성의 결과물로 충무공의 위패만을 따로 모시거나 아예 관왕묘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관왕묘는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고 해방 후에 현지의 유림들이 뜻을 모아 정전을 짓고 장군을 모셨으며 1980년대 이후 현재와 같은 규모를 갖추게 됐다.

충무사, 월송대, 어란정 등 유적남아
현재 충무사는 1872년 작성된 전라우수영 지도를 참고로 복원한 것으로 정전에 장군의 영전을 모시고 있다. 동재에는 1780년경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전진도첩(戰陣圖帖)이 보관되어 있으며 관왕묘비는 서재 뒤쪽에 가려져 있다. 지금의 충무사가 존재하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동아시아 열강 속에 부침을 계속해 온 한반도의 역사를 읽는 것과 같아 그 맛이 달지 만은 않았다.

충무사의 맞은편에는 월송대가 있는데 이곳은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에 시신을 80여 일간 안치했던 곳으로 지금도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장군의 본영은 고금도의 덕동리에 있었는데 주변에는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여러 유적이 남아 있었다. 덕동리 마을 뒤쪽의 구릉에는 장군의 군사들의 활쏘기 연습을 하였던 사정터가 있는데 현재는 우람한 은행나무 한 그루 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밖에도 왜적을 감시하던 망덕산(望德山), 군사들이 물을 마시던 어란정이란 우물이 남아 있다.

학동리 앞 바다는 넓게 펼쳐져 있는데 장군이 수군을 훈련시켰던 곳이다. 이곳에는 큰개, 작은개라고 불리는 섬이 있는데 이 섬들을 왜살도(倭殺島)라고도 부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장군의 아들을 죽인 왜병을 이곳에서 죽인 곳이라고 한다. 현재는 양식업이 한창으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生則必死 死則必生)'라며 병사들을 독려하던 장군의 목소리를 잊기나 한 듯 고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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