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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스페인 전설적 위조꾼의 걸작 전시회
스페인 김정현 기자  |  통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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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7  14: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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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재능의 소유자이며, 독특한 화가였지만 그보다는 전문적인 그림 위조꾼으로서 널리 알려졌던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한 전시회가 마드리드의 문화예술회관 CBA(Cirdulo de Bellas Artes)에서 호기심을 모으며 열리고 있다.

엘미르 드 호리(Elmyr de Hory, 1906-1976)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짜 그림을 남긴 화가라고 미술계에서 인정을 받는데, 단순히 유명 화가의 그림을 복사한 것이 아니라 그 화가의 화풍과 정신을 빌려서 자신의 그림을 창작하였기 때문에 전문가들조차도 쉽게 속일 수 있었으며, 나아가서 예술의 본질과 창조성, 진위 판별의 기준 등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미술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 드 호리, 어빙, 오송 월스의 생전의 사진 모습

그는 평생에 걸쳐 1,000점 이상에 달하는 위작을 판매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자신은 위조 행위를 철저히 부인하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 모네 등의 화가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악마적인 재능으로' 그림을 창작하였다고 반박하였으며, 그의 (가짜?)그림이 개인 수집가는 물론 세계 각지의 화랑 및 미술관에도 소장되어 있지만 일일이 진위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작품명 딜리아니 스타일

2013년 5월12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는 "다른 화가들의 스타일"로 그린 가짜 그림 28점, 그를 다룬 신문, 잡지 기사 등 관련 자료와 함께 "엘미르 드 호리 스타일"의 진짜 그림 6점도 전시되었다.

전시회를 주관한 측에서는 그의 좋은 그림은 거의 모두가 세계 각지의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다른 유명 화가의 걸작으로 가면을 쓰고 걸려있기 때문에, 전시된 작품은 그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의 사인과 함께 기증한 개인 소장품이라고 출처를 밝히며 양해를 구했다.

또 이번 전시회의 목적은 예술품을 자체의 가치인 아름다움과 창조성으로 대하지 않고 작가의 명성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되는 세태를 꼬집는 것이라고 하였다.
 

   
▲ 작품명 마티스 스타일

헝가리 출신의 유태인으로 알려진 드 호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무명의 화가로 근근이 생활을 하던 중, 1946년 어느 날 그가 그린 그림을 한 영국인이 피카소의 작품으로 오해하여 좋은 가격에 사가는 경험을 하자, 피카소의 화풍을 빌려서 그린 소묘를 가까운 화랑을 통해 팔기 시작하면서 수채화, 유화로 영역을 넓혔고 다른 유명 화가의 가짜 그림도 그리는 등 본격적으로 위작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가짜 그림이 프랑스에서 잘 팔리자 그는 미국에서도 운을 시험해 보려고 3개월 비자를 받아 뉴욕으로 향한다. 미국을 좋아하게 된 그는 1950년대 미국 각지를 전전하며 위조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두는 듯 보였으나, 팔리는 가짜 그림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들통 날 위험이 커지고 법망을 피해서 불안한 생활을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어딘가에 안주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 1972년 이비사에서 오손 웰스와 엘미르 드호리

미국 생활 11년을 청산하고 유럽으로 돌아온 드 호리는 1960년대 초에 스페인의 휴양지인 지중해의 이비사 섬에 정착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같은 섬에 거주해 그와 친분을 맺은 미국 작가 클리포드 어빙(Clifford Irving)이 집필한 전기 '짝퉁!(Fake!)' 이 1969년 발간되면서 그의 정체와 삶이 공개되었다.

그 후에 어빙은 은둔하여 생활하는 백만장자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의 자서전 발간을 1971년에 출판사와 거액에 계약하였지만 원고를 날조한 것이 출판 직전에 발각되면서 세기의 사기 스캔들로 번지게 되고 결국은 실형을 선고 받아 14개월을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된다. 

범죄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이들의 엽기적 행각을 오손 웰스(Orson Welles)는 '거짓과 진실(원제: F for Fake)´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1974년에 제작하여 예술의 본질을 묻는 어려운 질문을 드 호리의 입장에서 제기했는데 , 영화 자체가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는 다큐멘터리와 편집된 영상을 교묘하게 배합하는 페이크 다큐를 처음 시도한 문제작이기도 하다. 

전기의 출판을 계기로 드 호리는 유명해지면서 늦게나마 진정한 화가로서의 대접과 함께 진짜그림도 고가에 팔리는 행운이 찾아왔지만 1976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하기에 이르는데, 자살한 이유는 그 해에 체결된 스페인과 프랑스 간의 범인인도협정에 따라 프랑스가 그의 송환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비사 섬에서 지중해 식의 여유 있는 삶을 아주 만족해 하던 드 호리는 교도소에서 여생을 보낼 바에야 차라리 자살을 택하겠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유해는 이비사 섬에 묻혀 그가 진심으로 좋아했고, 또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던 섬사람들 곁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스페인 김정현 기자  통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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