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뉴스는 지난 교수신문에 기획연재되었던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의 '섬 이야기'를 통해 섬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겨진 흔적을 돌아보는 취지로 이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 안좌 읍동항에 재현한 김환기의 작품세계

신안군 안좌도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서양화가 수화 김환기(1913~1974) 선생이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다.

수화의 삶은 섬사람들의 기질과 예술혼을 꼭 빼닮았다. 자유분방하고 변화무쌍하며 드라마틱하다. 동경 유학을 다녀온 후에 서울대 예술학부 교수, 홍익대 미술대학 초대 학장, 한국미술협회장 등을 두루 거치며 한국 화단의 정점에 섰다. 그러면서도 그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예술을 갈구했다. 최고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 파리로, 상파울로로, 뉴욕으로 주유했다. 1974년 뉴욕에서 타계하자, 서울에서, 파리에서, 뉴욕에서, 상파울루에서, 그리고 동경에서 수화를 추모하는 회고전이 줄을 이어 열렸다. 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에 동참했다.

1980년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저명한 원로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수화와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수화 때문에, 수화에 의해서 미술평론가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수화를 "20세기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화가”라고 단언했다. 우리나라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그의 100주년 탄신일인 2013년 2월 27일을 맞아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네이버의 특별 로고로 장식하고 수화의 대표작을 온라인으로 특별 전시하기도 했다.

수화의 고향 안좌도는 그의 예술의 원초적인 영감원이었다. 안좌도의 대지주였던 부친이 돌아가자 그는 금고에 가득한 빚문서를 주저없이 소작인들에게 돌려주는 은혜를 베풀고 자신을 ‘지장(地莊)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 1944년 30대 초반에 홀로된 모친을 서울로 모셔올 때까지, 그는 안좌도와 서울을 오가면서 섬과 대도시가 내품는 양극적 분위기를 청년기의 예술적 감수성으로 품었다. 그리고 이를 글과 그림으로 표출해냈다.

1940년대에 섬의 독특한 문화와 자연을 '파시'와 '남풍'이라는 시로 서술했다. 그가 최고 화가의 반열에 오른 1961년에는 고향섬의 정경을 '기좌도의 달밤'이라는 그림으로 묘사했다. 1962년에는 수필 '고향의 봄'을 서술하여 고향 안좌도가 그의 그리움의 대상이고 예술의 원천임을 구구절절 드러냈다. 그는 글의 ‘서술’과 그림의 ‘묘사’가 별개가 아닌 일체임을 밝혔고, 실천에 옮겼다.

안좌도의 중심 마을인 읍동에 그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대지주의 집답게 섬 마을치고는 제법 구색을 갖춘 ㄱ자형 기와집이다. 그의 부친이 백두산에서 구한 아름드리 나무를 배에 싣고 와서 지은 집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집 입구에는 2009년 8인의 독일작가가 방문하여 남긴 핸드프린팅이 있다. 읍동의 선착장, 관공서, 개인집의 담벼락, 그리고 거리 곳곳에는 근래에 수화를 기리는 후배 작가들이 방문하여 수화의 그림과 조형물들을 재현해 놓은 흔적이 즐비하다.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예술섬’ 안좌도의 미래상을 미리 엿보게 하는 진귀한 볼거리다.

▲ 김환기 생가

1972년 제1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안좌도의 부속도서 사치도의 사치분교 농구부는 준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시 사치분교에 부임해온 부부교사 권갑윤, 김선희 선생님은 사치분교 어린이들에게 단결력과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농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전교생 60여명에 불과한 사치분교 어린이들은 부부교사의 지도 하에 열악한 조건을 무릅쓰고 힘든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1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올렸던 것이다. 이 소식은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 대서특필되었고, 지도교사와 농구부 선수들은 청와대에 초청되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접견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대통령의 지시로 사치도에 선착장이 만들어졌다. 디젤 엔진이 장착된 도선이 제공되기도 했다.

사치분교 농구단이 올린 쾌거는 ‘섬개구리 만세’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정진우 감독, 신일룡과 김영애 주연의 ‘섬개구리 만세’는 1973년 4월 18일 개봉되었다. 사치분교 선수들이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영화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제10회 청룡영화제에서 감독상, 촬영상, 신인연기상, 남우조연상 등 4개상을 휩쓸었고, 제2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영화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사치분교 농구부의 활약상은 전국을 넘어 세계의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2009년 7월 1일 안좌초등학교에 ‘사나래 윈드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다. 전교생 80여명 중에서 3~6학년 40여명의 정단원과 10명의 예비단원으로 구성되었다. 지도교사의 지도 아래 악기를 구입하고 외부강사의 지원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2010년 2월 24일 안좌면 ‘천사의 다리’ 준공식 식전행사 공연을 시작으로, 목포시향, 고창 강호항공고, 해군 3함대 군악대 등과 협연을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2012년 11월 9일에는 전남 교육청의 주선으로 안좌도를 방문한 루마니아 바카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협연을 해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했다.

안좌초교는 2012년 KBS의 다큐 제작 대상학교로 선정되었다. KBS는 6월에서 12월까지 7개월에 걸쳐 현장 촬영을 진행하여, 12월 29일 ‘사나래 윈드오케스트라’의 감동적인 사연을 연말특집으로 전국에 방영했다. 2013년 1월에는 신안군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공동으로 ‘천사섬의 천사들을 위한 아트캠프’를 실시하여, 9명의 한예종 재학생들이 강사가 되어 ‘사나래 윈드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직접 지도하고 협연까지 하였다.

사치분교의 농구부와 안좌초교 ‘사나래 윈드오케스트라’는 섬 소년들이 운동으로, 음악으로 전국에, 세계에 그들의 저력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그들 중에서 미술이 아닌 체육과 음악을 통해서 김환기 선생의 위업을 재현할 인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결과는 창대하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들의 안좌초교 대선배 김환기가 증거했으니 그것은 더 이상 꿈만은 아닐 터이다.

강봉룡(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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