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뉴스는 지난 교수신문에 기획연재되었던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의 '섬 이야기'를 통해 섬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겨진 흔적을 돌아보는 취지로 이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전라남도 진도군 남쪽에 있는 조도군도. 정월에 바닷가 갱번에서 미역바위를 닦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미역이나 톳의 포자가 바위에 착상하기 쉽게 하기 위해 바위에 붙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사진=송기태

인류에게 생업기술의 발달과 변화는 문명의 전환으로 이어져왔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 산업사회 등으로의 전환은 삶의 토대가 되는 생업의 변화에 근거하고 있다. 특히 인류의 문명 전환에서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의 이행은 혁명적인 사건으로서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진화였다. 농경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작점이었다. 인간이 환경 그 자체에 적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발하고 이용하면서 예측 가능한 자연을 만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에서의 경작은 어떠한가.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근대적인 양식어업이 도입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해조류와 패류의 양식이 진행돼 지금은 전국의 해안이 ‘경작하는 바다’로 변모됐다. 육지에서의 농경이 선사시대부터 시작됐다면, 바다에서의 경작은 3천여년이 늦은 20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해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다에서 근대적인 양식어업이 뒤늦게 등장하긴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옛 사람들은 ‘바다를 경작’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해안가와 갯벌을 통틀어 ‘바다밭’, ‘갯밭’이라고도 하고, 채취하거나 수확하는 품종에 따라 ‘미역밭’, ‘톳밭’, ‘바지락밭’, ‘꼬막밭’ 등으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촌 사람들이 해안가 지역을 ‘밭’으로 명명하는 것은 육지의 경작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인식했음을 말해준다. 다만, 갯벌과 해안을 밭으로 명명한다고 해서 실제 ‘심고－기르고－수확’하는 경작지가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양식어업이 시작되기 전의 경작관념은 실제의 경작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해조류를 대표하는 미역의 경우 전통시대부터 실질적인 경작의 대상이 됐다. 전국의 갯바위 해안지역에서 행해지는 기세작업, 즉 갯닦이가 그것이다. 갯닦기는 미역이나 톳의 포자가 바위에 착상하기 쉽게 하기 위해 딱가래 등으로 갯바위에 부착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갯바위에 자라는 각종 해조류 중에서 현재 인간이 섭취하지 않는 해조류(일명 풀, 이끼)를 제거함으로써 미역의 뿌리가 바위에 붙어서 튼튼하게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바위 한 번 닦는 것에 불과하지만, 문명사적으로는 인류가 해산물을 경작하는 초기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서 혁명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점진적으로 파종과 생육을 진행했듯, 바다에서도 본격적인 양식어업의 등장 이전부터 점진적인 경작으로의 이행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통시대의 ‘바다 경작’과 관련해 전라남도 진도군의 조도군도지역에서는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남쪽에 자리한 조도군도는 154개의 섬들이 새떼처럼 많이 모여 있다고 하여 이름마저 새 섬(鳥島)이다. 이 지역에서는 ‘진도곽(珍島藿)’으로 유명한 자연산 미역을 채취해 판매하고 있는데, 미역의 생산 과정에서 전통적인 ‘바다 경작’의 진화과정을 담고 있다.

조도군도는 미역밭의 관리와 채취 과정이 타 지역에 비해 촘촘하게 구성돼 있다. 음력 섣달과 정월에 해안가 갱번에 모여서 고사를 지내고 미역바위를 닦는다. 바위에 붙은 불순물을 제거해야 미역의 포자가 바위에 직접 착상을 하여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음력 3월~4월 봄철이 되면 썰물로 드러난 미역밭에 갱물을 뿌리고, 음력 6월~7월에 미역을 채취한다.

조도군도에서 특징적인 작업은 미역밭에 갱물을 뿌리는 ‘물주기’라는 작업이다.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발에는 미역이 서식하는 조간대가 썰물 때 드러나고 어린 미역이 봄철의 뜨거운 햇볕에 말라서 데쳐져버린다. 그래서 미역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썰물에 드러난 미역밭에 바닷물을 뿌려준다. 이러한 ‘물주기’는 뭍의 밭에서 농작물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자연산 미역의 경작’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곽전(藿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현재도 미역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해안가에서 해조류를 경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어촌의 주민들은 자연산 미역과 양식미역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러한 구분에 의해 가격의 차이가 많이 난다. 양식미역이 미역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금, 자연산 미역은 양식미역에 비해 비싸고 좋은 미역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갯닦이와 물주기를 통해 생산된 미역은 자연산일까? 양식산일까? 자연산과 양식산의 차이는 ‘인간이 경작을 통해 생산하는가’의 기준에 따른 것인데, 조도군도를 비롯한 전국의 갯바위에서 채취하는 미역은 자연산 대접을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자연산 미역은 곽전(藿田)이라고 하여 ‘미역밭에서 경작하는 작물’로 취급했던 것으로 ‘자연산 미역’은 자연산임을 강조하면서도 문화적으로는 경작의 관념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송기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송기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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