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꽃섬’이 아니라 징검다리 ‘이슬섬’이다

문화	‘갈꽃섬’이 아니라 징검다리 ‘이슬섬’이다 통합뉴스 \| webmaster@tonghabnews.com

승인 2015.05.18 09:08:16

통합뉴스는 지난 교수신문에 기획연재되었던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의 '섬 이야기'를 통해 섬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겨진 흔적을 돌아보는 취지로 이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전국 전복생산량 약 70%를 차지하는 완도군. 그 중심지가 노화도이다. 지금은 가구당 순소득이 연 1억이 넘는 전국 제일의 부자마을이지만 찢어지게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흔히 ‘갈꽃섬’ 이라고 불리지만 사연이 있다. 사진=변남주

완도군 노화도는 그야말로 복 받은 섬이다. 흔히 ‘갈꽃섬’이라 불리는데, ‘갈대꽃섬(蘆花島)’에서 나온 말이다. 가구당 순소득이 연 1억이 넘는다. 구석구석에 별장 같은 2층집, 외제차가 40여 대, 대형 승용차가 즐비해 놀란다. 이러한 부의 축적은 최근 전복 양식 때문이다. 전국 전복생산량의 약 70%를 완도군이 차지하는데 그 중심지가 노화도이다. 노화도 전복은 성장이 빠르다. 바다가 깨끗해서 전복에 석화(굴)가 기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보길도와 다리로 연결되자 보길도 관광객이 노화도 북쪽의 산양진항을 이용하면서 유동인구가 대폭 증가했다. 이 덕분에 노화도는 관광의 활성화까지 꿈꾸며, 최근 구절초 특화사업과 전복축제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전국 제일의 부자마을 노화도, 찢어지게 어려운 시절 즉, 보릿고개가 있었다. 육지 농촌에 비해 더욱 심했다.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먹을거리가 떨어져 배가 고팠다. 농토가 부족한 섬일수록 더욱 심했다. 가난한 흥부네 같이 자식들은 많았으니 부모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이를 극복하는 길은 육지에서 식량을 구해오는 것이 유일했다. 자식들을 굶겨죽일 수는 없었다. 1920년대 봄, 노화도에 사는 한 어머니는 지난 가을 말려 놓은 해초를 보따리에 야무지게 싸서 목포행 풍선배에 올랐다. 초행이라 속이 뒤틀리는 배멀미도 겪었다. 꼬박 하루가 걸려 목포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 마음대로 식량과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목포는 해산물이 각처에서 몰리는 곳이기 때문에 헐값이었던 것이다. 와중에 어머니는 희소식을 들었다. 삼 십리 밖에 있는 일로마을에 가면 제값에 간척지 쌀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보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해초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흙먼지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십리 쯤 걸었을 무렵! 시커먼 괴물체가 괴성과 함께 ‘쿵쾅 쿵쾅’ 아주머니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보따리를 집어던지고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을 쳤다. 노화도 어머니가 본 것은 다름 아닌 기차였다. 참으로 암울했던 시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헷갈리는 이야기다.

요즈음에는 노화도와 목포를 오가는 여객선이 없다. 대신 해남 땅끝마을에서 배를 탄다. 30분이면 도착하니 그리 먼 섬이 아니다. 인근에는 여러 섬이 있어 외롭지 않다. 소안도, 넙도, 보길도 등이 있고 남서쪽에 추자도, 멀리 제주도가 있다. 이중에 보길도는 노화도와 면적이 비슷하면서 남북으로 서로 인접한다. 보길대교로 연결돼 사실상은 하나의 섬이다. 그런데 노화도는 고산 윤선도의 은거지로 알려진 보길도에 비하면 유명한 섬이 아니다. 보길도에 비하면, 경치마저 수려하지 못하고 뚜렷한 관광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이웃에 있건만 보길도는 산악지대로 난대 활엽수림이 울창한 반면에 노화도의 경우는 해송 중심의 밋밋한 야산과 간척지 논이 많다. 농토가 많은 덕에 노화도는 보길도보다 물산은 풍부했다.

▲ 전남 완도군 노화도(사진 오른쪽)에서 보길도로 연길된 보길대교 모습이다. 사진=변남주

조선시대 노화도의 도청마을에는 한양의 궁방에서 토지세를 수납하는 도봉청이 설치됐고, 19세기 말에는 보길도와 넙도까지 아우르는 삼도 수군진이 설치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목리 항구에 5일장이 들어서고 제2의 목포라 불릴 정도로 흥청거렸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 관광산업이 활성화되자 보길도가 점차 주목받는 섬으로 부상하더니 결국 노화읍에 속했던 보길도는 1986년 면으로 승격되면서 떨어져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알고 있는 노화도 어르신들의 의식 속에는 보길도에 대한 아쉬움과 강한 거부반응이 교차한다. 그 원인은 라이벌의식이 아니라, 노화도의 이칭인 노아도(奴兒島)가 ‘어린노비와 관련된 섬’으로 해석되는 지명유래설 때문이다.

▲ 18세기 팔도지도의 제주해로와 노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1637년 고산 윤선도(이하 고산)가 보길도에 은거하기 시작하면서 노화도에 어린 노비를 보내어 간척을 했고, 이런 연유로 노아도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이야기다. 하지만 일부 어르신들은 ‘우리들이 고산 노비의 후손이냐’며 발끈한다. 그런데 노화도에는 고산이 보길도 입도 시 어릴 때 데리고 왔다는 설씨 부인 묘가 있었고, 고산이 막았다는 간척지와 저수지도 있다. 사실 고산은 5백 명이 넘는 노비를 거닐고 있어 간척이 가능했다. 이로만 비추어 보면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개인적인 상상으로 지어낸 낭설에 불과하다.

노화도 지명 유래는 살폈듯이 ‘어린노비(奴兒)설’ 외에 ‘갈대꽃(蘆花)설’이 있다. 옛 기록은 노도(露島), 노슬도(露瑟島), 노량(露梁), 노아도(露兒島, 老兒島) 등으로 확인되나 노아도(奴兒島)는 확인되지 않는다. 첫 기록은『고려사』에서 노도와 노슬도다. 우리말로는 ‘이슬섬’이 된다. 그런데 노(露)는 물방울 이슬이 아니라 ‘잇다’의 ‘이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주해로와 관련지어 보자. 육지(해남, 강진, 나주)에서 제주를 오갈 때 노화도를 징검다리 삼아 건넜다. 노화도를 제주도에서는 ‘노슬도’라 했고, 징검다리의 뜻을 지닌 ‘노량’이라고도 칭했다. 또 징검다리를 고칭 ‘노두’라고 하였으니 노화도는 분명 징검다리 ‘노두섬’이다. 이런 이슬섬 지명은 18세기까지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됐다.

다음은 고산의 노아(奴兒)와 관련짓는 노아도(露兒島)를 살펴보자. 언제 등장했을까. 성종 21년(1490) 기록에 이미 등장한다. 고산의 입도시기보다 훨씬 이전이므로 고산의 노비와 관련지어 판단할 이유가 없다. 이런 노아도(露兒島) 지명은 17∼18세기에 노도와 병용되다가 19세기에는 단독으로 사용됐는데 1905년 무렵까지 사용됐다. 그런데 을사늑약 이후 일제에 의해 노화도(蘆花島)로 개명됐다. 일제의 경찰서 공문서에 처음 등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살펴보니 노화도 지명은 일제잔재다. 우리는 이를 멋지게 풀이해 ‘갈꽃섬’이라 하고 있으니 곰곰이 생각할 일이다.

▲ 변남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