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12월 22일 오전(현지 시간)에 세계 최고의 당첨금으로 알려진 성탄절 복권추첨 행사가 진행됐다. 

각 학교가 12월 21일부터 방학에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스페인의 성탄절 축제 하이라이트는 복권 추첨인데, 이 복권은 올해로 꼭 200년 전인 1812년에 처음 생긴 이래로 한해도 거른 적이 없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당첨금을 자랑한다.  

이 복권은 스페인 근대사를 거치는 동안 왕정과 공화정 그리고 40여년에 이르는 독재정권 등의 파란만장한 역사적 굴곡을 거치면서도 한번도 중단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스페인 내란(1936년-1939년)중에도 양측이 합의하여 복권을 추첨하는 등, 스페인 근대 200년 역사를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지켜본 증인이라고 하겠다. 

특히 올해는 복권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왕립극장에서 추첨이 진행되었는데, 행사를 취재하려고 세계 각국 언론들이 특파원을 파견하였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 언론도 참가하여 열띈 취재를 벌였다.   

▲ 스페인 마드리드 현지 복권판매회사 앞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있다.

복권추첨 행사는 오래된 전통대로 1543년에 설립된 ‘산 일데폰소’ 학교(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의 남녀 어린이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하나씩 추첨되는 복권번호와 당첨금을 크게 외치며 추첨할 때 축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1771년 스페인에 처음으로 복권이 생길 때부터 복권추첨은 이 학교 어린이들이 전담해 왔으며, 학교에서는 목소리가 좋고, 성격이 활달한 어린이들을 미리 선발한 후에 충분한 연습을 하여 행사에 대비한다. 

추첨 방법은 다섯 자리로 이루어진 각 복권의 번호가 새겨진 공을 커다란 원통에 넣고 회전시키다가 공을 하나 떨어뜨리면 그 공의 번호를 크게 외치고, 그 옆에서는 상금 액수가 새겨진 공을 같은 방식으로 떨어뜨리면 해당하는 상금 액수를 크게 외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추첨된 공들은 공증인도 같이 배석한 주최 측에 제시하고 확인을 받는데, 추첨의 전 과정을 끝내려면 여러 시간이 소요되므로 남녀 어린이가 한 조가 되어서 진행을 교대로 한다. 

복권추첨과정에서는 큰 상금이 걸린 당첨을 외칠 때는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글썽거리기도 하는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된다.  

쿠폰 장당(10분의 1 분할권)판매가가 20유로(한화 약 3만원)인 복권은 여름휴가가 끝나는 9월 초에 이미 발매를 시작하여 추첨 하루 전인 12월 21일까지 판매한 후에 22일에 추첨을 했는데, 올해의 총 발매액은 24억6천만 유로(한화 약 3조 5천억)이고, 그 중 70%인 17억2천만 유로(한화 약 2조 6천억)가 당첨금으로 지급되는데, 이 액수는 스페인 국민 1인당 평균 52.5유로를 크리스마스 복권 구입에 사용한 것으로 추산된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스페인 국민들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과 성탄절 복권을 공동으로 구입하거나 서로 번호를 교환하기도 하고, 복권을 선물하기도 하면서 서로의 행운을 빌고 인정을 나누며 한 해를 마감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1812년 당시 스페인은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 국토가 유린되어 힘든 전쟁을 하는 시기였는데, 성탄절 복권은 당시 전쟁에 시달리던 국민들에게 연말을 맞아 꿈과 희망과 승리에 대한 사기진작, 그리고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생겨났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복권 발매금은 전후복구 등, 일반적인 세금 징수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용도로 사용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오늘까지도 스페인 정부 예산의 중요한 재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르도(gordo, ‘굵다’는 뜻)로 통하는 복권의 1등 당첨상금은 복권 1조(쿠폰 10장)당 4백만 유로에 달하는데(쿠폰 당 40만 유로, 한화 약 5억7천만원), 이번에 당첨된 번호 76.085는 스페인 전역에서 수백명에게 골고루 팔려서 축제 분위기 조성에 크게 한 몫을 했다.  

특히 마드리드 근교의 ‘알깔라 에나레스’라는 곳에 당첨자들의 소식은 스페인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곳 당첨자들 중에는 회사가 경매 처분에 넘어가 5개월째 급여를 받지 못한 공장의 노동자들, 가장의 장기 실직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가족, 은행에 주택 할부금을 상환하지 못해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의 실직자 등등, 스페인 경제 위기가 원인이 되어 생겨난 서민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복권 당첨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1등 당첨이 아니더라도 최저 1,000유로(한화 150만원)로 시작되는 성탄절 복권의 각종 상금은 스페인 전역에 골고루 나누어지며, 크지 않은 당첨금이지만 국민들에게 힘들었던 한해를 마감할 수 있도록 연대감을 조성하는데 이 복권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전 국민이 도박중독 증상을 보이며 일확천금의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한국 복권인 로또와 비교하면 스페인의 성탄절 복권은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전 국민의 축제 분위기로 국민화합과 연대감을 이끌어 내는 좋은 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국 대통령 선거로 계층과 세대가 사분오열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국민화합과 연대감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상실감이 큰 국민들은 사행성 산업에 더 빠져들 것이다. 지하경제를 활성화시킨다던 박근혜 당선자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진 않을까 두렵다.  

한탕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해 가는 조국의 현실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국민을 위한 통합 이벤트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 나라의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스페인 김정현 기자  통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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