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면 해방 후, 어떤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들 만났을까. 또한 만나서는 무엇을 했을까. 필자는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여기서 1950년대 후반 이 거리를 누비던 한 젊은 시인의 「오거리」를 소재로 한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

                                                                      吾 居 里
                                                                                                                윤종석
 
                        오랜 날을 눈 멀어 살다가
                    문득 손금을 펴 보면,

                    그 안에 시퍼런 江물이 흘러내리고
                    나머지 하나는 끝내 내 속에 와서 피가 되고

                    얼마나 많은 손금은 스스로 물결을 일고 갔을까.

                    그런 瑤池鏡 속을 나무램 없이 사라가는 吾居里 사람들은 차라리 神父였다.

                    탄피가 날고 땅이 꺼지는 우람한 地理를 넘어 울렁인데도 고요한
                    참으로 고요한 窓邊 같은 곳.

                    어제는 모두 이야기 같은 것이 아니었는가.

                    吾居里는 커다란 試鍊의 내부를 뚫고 도는 喊聲을 하고,

                    西으로만 가면 빨간 太陽이 이글이글 타는 終點에서 宿命이 되고
                    결론이 되어 황홀한 향연.

                    스스로 견디어 온 나날을 吾居里는
                    分別과 어디쯤 하나로 겹칠 기약을 하고 바라는 것.

                    심장 같은 중심새 鐘韻의 새벽을 凝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런 電信柱를 타고
                    벅찬 발(足)은 밤의 密度를 檢尺하고
                    무수히 날아드는 것이다.

1959년 발표된 윤종석 시인의 작품이다. 목포가 예향으로서의 향기를 날리게 되는 초창기 오거리를 누비며 외치던 시다. ‘오거리’ 를 한자로 쓰면 ‘五街里’ 일 터인데 ‘吾居里’ 로 같은 음을 다른 한자로 표기해 놓았다. 그렇다고 다른 뜻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한자로 바꾸어 놓으니 영 다른 맛이 풍기지 않은가.

시인 최재환

단순히 다섯 갈래로 갈라진 것 외에 다양한 어떤 삶의 형태가 살아 움직이는 듯처럼 느껴진다. 모두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쌀겨나 보리재 개떡으로 연명하던 시절, 그래도 오거리에 나오면 지인들을 만나 맹차(?)를 마시고 휩쓸려 다니며 누가 월급을 받았거나 어느 문인이 고료를 받았다는 소문만 들리면 그 뒤에 줄을 대던 시절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래서 오거리는 목포 예술의 중심지로 응집됐다. 문인들이, 미술인들이, 음악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 거리를 누비기 때문에 ‘오거리에 서서 한 시간만 버티면 목포 시민 다 만날 수 있다,’고 할 만큼 사람들이 붐비고 바빴었다. 극장이나 예식장, 다방을 빌어 전시회를 열고, 문학의 밤을 열고, 학교의 예술제, 각종 축하행사, 송년의 밤까지 섣달이면 몇 날이고 그칠 줄을 몰랐었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 오거리를 누비던 예술인들을 대충 살펴보면(50년대 이후 자세한 면면은 각 예술 장르별로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문학에 차재석, 백두성, 전승묵, 박상건, 박순범, 김재희, 정영래, 정규남, 이창렬, 김우정 박정온, 윤종석, 권일송, 김일로, 최하림, 최규철, 김소남, 김종규, 이영식, 박진철, 정태정 씨 등이 거리를 누볐었고, 미술에 남농 허건 선생을 비롯, 취당 장덕, 백홍기. 양수아, 김수호, 강동문, 김암기, 박석규, 최낙경, 구대일 등과 각 학교 미술교사들이 몰려다닌 걸로 기억된다.

음악의 최경산, 이영기, 정갑순, 연극의 김길호, 최명수 등등 필자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분들이다. 물론 이 면면은 1950년대까지만 대충 살펴 본 얼굴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분들의 영향을 받아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더욱 많은 예술인들이 열화같이 일어서서 목포 문화의 기치를 드날렸었다. 만나면 차 한 잔, 막걸리 한 사발이지만 정으로 배를 불렸고 또 오가는 이야기는 세상을 덮을 만큼 많고 다양해 통금에 묶여 밤을 눌러 앉은 채 밝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예술과 거리가 먼 사람도 오거리에 와야 비로소 예술인을 만날 수 있었고, 또 같이 덩달아 어울리다 보니 취할 수밖에 없었다. 오라는 사람도 없고 반길 사람이 없더라도 오거리에 나서면 너나없이 친구처럼 하나 되어 같은 배를 타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찾아온 문화인들, 예술 분야가 아닌 기업인, 상공인들도 이 거리 어딘가에 진을 치고 앉아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서남해안 7개 군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생활문화를 과시하며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타협이 이루어지기 어려웠으며,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토론과 야성을 띤 문화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으리라.

사람 사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어야 이야기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법! 그래서 오거리 문화가 기지개를 펴게 되었으리라. 다분히 다혈질적이요 열띤 논쟁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진을 지고 앉으니 자연스럽게 주변의 상가들이 북적거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이렇게 살아 숨 쉬는 오거리는 바로 목포의 심장이었다.
 

* 이 글은 지난 11월 17일 제4회 목포문화예술협회 심포지엄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시인 최재환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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