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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농부의 아내 마찌꼬 ...그녀가 행복한 이유한국 농부의 아내로 살아온 25년...3명의 아이 엄마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삶
“남편과 아이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 행복한 일 아닌가요?”
마찌꼬의 행복은 ‘늘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
김현수 기자  |  newsman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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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12  18: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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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찌꼬와 김영봉씨 부부

[통합뉴스 김현수 기자] 한국인 농부의 아내 마찌꼬를 만난 것은 지난 2017년 4월경으로 기억한다. 부부를 마주한 지 벌써 4년이 지났지만 힘겹고 지친 농촌의 일상에도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느꼈던 감회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그녀는 작은 일에서부터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국에서 농부의 아내로 25년 어려운 농촌에서 적응해 살아가면서 눈물도 많았다. 일본 니가타 현에 보통가정에서 태어나 한국 농부와 결혼한 마찌꼬 씨, 한국인 농부의 아내로 그리고 세월이 흘러 3명의 자녀를 키우며 좌충우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다시 찾아본다.

   
▲ 농가 뒤로 양파가 심어져 있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밭으로 나간 부부의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마찌꼬가 살고 있는 곳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무안군 망운면에 위치한 슬래브 주택 지붕위로 밝은 분홍색 벚꽃이 흔들거리고 있었고, 당시 울타리 벽에는 붉은 동백이 봄을 말해주고 있었다.

당시 취재진의 인터뷰를 강하게 거절하는 것도 농번기를 맞은 농부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마찌꼬가 살고 있는 집 인근 밭에는 양파가 심어져 있었다. 키가 많이 자란 양파 밭에서는 비닐 밑에서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잡초들이 영양분을 훔치고 있었다.

농가주택에서 만난 마찌꼬 배우자 김영봉 씨는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에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농사꾼 김영봉 씨는 숟가락을 놓자마자 밭으로 나가는 채비를 서둘렀다.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영봉 씨 또한 마찌꼬와의 인터뷰에 대한 불편함으로 인사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찌꼬는 한국 농부와 결혼해 지난 1996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주했다. 그가 이곳에 도착해 처음 느낀 것은 완전히 시골이구나 하는 생각과 자신이 살고 있던 도시와 너무도 다른 풍경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 무안군으로 오기 전 도시생활을 하던 마찌꼬는 일본 니가타현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기억도 꺼내어 놓는다. 그녀의 고향은 도쿄에서 차로 2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마찌꼬가 살고 있던 도시에서는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니가타현에서는5월 초
도깨비불로 유명한 츠가와에서 전해지는 에도시대의
혼례 습관을 재현한 결혼 의식인 츠가와 
여우 혼례 행렬 행사가 개최된다. 
새하얀 복장의 신부가 여우로 분장하여 
밤의 가도를 걷고 108마리(사람)의 수행을 이끌고 
기린잔산공원까지 행렬하는데 마을에는 불빛을 끄고
횃불이나 등불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진 제공 니가타현 광광국)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고향의 도시와 너무도 다른 낯선 땅에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한국 농부와 결혼해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농사일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특히, 힘든 농사일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문화적 차이에서 나타났다. 마을 남편의 친구들이 불쑥 집에 들어와 냉장고를 열고 하는 것은 마찌꼬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존중하는 일본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적 차이가 당시 신혼인 마찌꼬의 생각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냥 집안에 들어와 부엌에서 냉장고 문을 열어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며 마찌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지난 기억이 아직도 그녀의 문화적 차이에 큰 기억으로 생생하다.

문화에 차이는 그것만이 아니다. 한국 남성의 무뚝뚝한 말투와 표현 방법도 마찌꼬가 겪어야 할 또 다른 차이다. 이주여성에 대한 주변의 선입견과 소통의 문제도 매우 힘든 일 중 하나다.

마찌꼬가 전라남도 무안으로 시집올 당시 시아버지는 질병으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의 환자였다. 간호사로 근무했던 그는 매일같이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기꺼이 해냈다. 지금의 일회용 기저귀가 없던 당시는 면 기저귀를 매일 손빨래를 통해 사용하는 시절이다.

25년 전 당시에도 그녀가 살고 있는 집에는 세탁기가 있었지만 환자의 기저귀 빨래는 손세탁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그는 농부의 아내로 시집와 신혼 2년 동안 그렇게 시아버지를 돌보았다.

남편 하나만 보고 시집온 젊은 마찌꼬는 작은 슬래브 농촌 주택에서 고단한 생활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것도 문화적 차이일까. 마찌꼬가 시아버지 병수발을 하면서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는 모습과 정성을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은 효녀라고 칭찬하기 시작한다. 지금도 그녀는 당시 아픈 시아버지를 모시면서 한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가난한 농부의 부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농사일과 공원의 도로에 잡초를 제거하는 공공근로 일까지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몇 년 전까지도 면사무소 공공근로 청소를 하면서 힘들다고 말하기보다 바쁘다고 말한다.

   
▲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농촌 주택 뒷마당 언덕에 심어진 나무에 꽃이 피면서 봄을 알리고 있다

시집올 당시 남편은 8백 평 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과 품앗이로 집안 살림을 꾸렸다. 그리고 2017년에는 임대한 밭까지 5천 평 가깝게 농사를 짓고 있지만, 농사만으로 3명의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생활하기 힘들어 공공근로까지 해야 하는 형편이다.

결혼 전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던 그녀는 한국에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자동차도 없어 꽃구경과 같은 여행을 해본 일이 없다. 지금은 조그만 차도 마련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켜 주는 경우도 있지만, 25년 동안 여행을 한 번 제대로 해본 일이 없다. 

여행을 가지 못하거나 농촌의 생활이 어려운 것은 힘들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다. 오히려 마찌꼬는 한국에서 농부의 아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다시 25년 전으로 돌아가도 농사꾼의 아내로 살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녀를 키우며 힘든 일도 있지만 이제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강조하면서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그녀가 오히려 부자이며 행복한 사람이다.

   
▲ 그녀가 살고 있는 집 담을 물들이고 있는 동백꽃

눈물

눈물이 많은 그녀는 남모르게 눈물을 흘린 일이 많았다. 슬퍼서 우는 것보다 감동을 받아서 우는 일이 많았는데, 주변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고맙다고 말하면 이것이 감동되어 눈물을 흘렀다.

그녀도 고향에 부모가 있다. 노령의 부모님을 말하면서 그녀는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나이가 많이 드신 만큼 자주 갈 수 없는 고향에 부모님을 보살펴드리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와 고향인 나가타현을 다녀온 것은 단 4번, 5년에 1회 정도 고향을 다녀왔다. 90세가 넘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직 일본에서 살고 있다.

3명 아이들의 엄마

그가 한국의 마찌꼬로 생활을 시작하고 25년. 그녀가 가장 힘들었다고 느끼는 것은 시부모를 모시는 일이나 농사가 아니다. 농산물의 폭락과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한국인 마찌꼬가 느끼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다.

지금은 아이들도 성장해 큰아들은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딸아이와 막내까지 대학을 다니고 있다. 마찌꼬는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의료보험이 되지 않았던 기억도 서운하다. 그래도 가장 서운하게 느끼는 것은 마찌꼬라는 이름 앞에 붙어있는 이주여성이라는 또 다른 이름표다. 아직도 그녀는 ‘가와아이 마찌꼬’의 이름으로 한국에서 사고 있다.

한국에서 1남 2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그가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또 다른 이름표를 의식해 서운함을 이야기 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에 힘든 일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한국의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분리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서운함 중 하나다.

주변 사람들의 마찌꼬 칭찬도 자자하다. 마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효녀로 열심히 사는 것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마을의 한 주민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효녀다"며 "시부모를 모시는 효심이 지극해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의 시부모들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농부의 아내로 그리고 3남매의 어머니로 한국인 여성으로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다. 농부의 아내이자 3명의 자녀의 엄마다. 가와아이 마찌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행복하다고 설명한다. 그녀가 행복한 이유는 너무도 단순해 삶에 지친 우리에게 신선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소박함이 어려운 환경에서 강철같이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작고 소박한 행복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가족들과 식사 자리에서 서로의 일과를 묻고 이야기하는 시골의 한 농가의 담벼락에서는 붉고 흰색의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김현수 기자  newsman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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