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뉴스는 지난 교수신문에 기획연재되었던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원의 '섬 이야기'를 통해 섬들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겨진 흔적을 돌아보는 취지로 이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진도 용장산성의 왕궁터 전경. 벽파진을 통해 진도에 상륙한 삼별초는 용장산성을 보수하고 그 중심부에 왕궁을 건설했다. 왕궁은 전형적인 고려 왕궁의 양식을 본뜬 것으로 개경의 왕궁 만월대에 못지 않은 위용을 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목포대 박물관

서해안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진도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서남해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을 관장하는 맏형이다. 육지 못지않게 넓은 옥토를 보유하고 있어 한때 비옥한 고을이라는 뜻의 ‘沃州’라 불리기도 했다. ‘보배로운 섬’이란 의미의 ‘珍島’ 역시 풍요로움을 함축하는 이름이다. 한 때 그 진도에 또 하나의 고려 王都가 존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이름에 내포된 진도의 그 화려함에 역사의 색깔을 덧씌워준다.

그 발단은 1231년 몽골제국의 고려 침략에서 비롯한다. 당시 고려의 실권을 거머쥐고 있던 최씨 무인정권은 1232년 개경에서 강화도로의 천도를 전격 단행했다. 이후 고려는 1270년 몽골과의 협상에 의해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40년 가까운 세월 섬과 바다를 배경 삼아 치열한 항쟁을 전개했다. 그 대몽항쟁의 선두에 삼별초 군단이 있었다. 삼별초는 개경 환도 결정을 몽골에 대한 투항으로 간주해 이에 불복했다. 그들은 1270년 6월 1일 배중손 장군의 지휘 하에 봉기해 강화도를 점령하고 왕족 승화후 王溫을 추대해 개경의 고려왕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고려왕으로 삼았다. 그리고 2일 후인 6월 3일에 1천여척의 배를 동원해 공사 재물과 사람들을 가득 싣고서 강화도를 출발해 남으로 향했다.

삼별초가 향한 최종 목적지가 바로 진도였다. 벽파진을 통해 진도에 상륙한 그들은 용장산성을 보수하고, 그 중심부에 왕궁을 건설했다. 그 용장산성은 총길이 12km가 넘는 대규모 산성임이 근래에 밝혀졌다. 그리고 그 왕궁은 산사면에 여러 단의 축대를 쌓아서 입체적으로 건물을 배치하는 전형적인 고려 왕궁의 양식을 본뜬 것으로, 개경의 왕궁 만월대에 못지않은 위용을 과시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삼별초는 진도에 또 하나의 고려 왕도를 건설했던 셈이다.

진도의 삼별초는 서남해 다도해의 섬들을 威服시켜 일종의 ‘해상왕국’을 건설했다. 진도와 그 휘하의 다도해는 모든 조운선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국내 바닷길의 길목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개경으로 향하는 모든 稅穀은 고스란히 진도의 차지가 됐다. 개경의 고려 왕조는 재정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진도 측은 한 술 더 떠서 일본에 사신을 보내 몽골제국의 침략 위협을 알리면서 바다를 매개로 한 정치군사적 연대를 제안하기까지 했다. 40년 침략 끝에 겨우 개경에 친몽 고려정권을 세웠는가 싶었던 몽골제국에게 진도는 골칫거리였고 위험의 대상이었다. 일본 정벌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몽골은 일본 정벌을 위해 마산과 김해 일대에 주둔시켰던 몽골군단을 진도 쪽으로 이동시키는 조치를 단행했다. 개경의 고려 정부도 군사 총동원령을 내려 진도로 향하게 했다.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여몽연합군)은 1270년 9월에 진도 벽파진이 건너다보이는 해남의 삼지원에 집결해, 진도 총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연이은 패배였다. 반면 진도 측은 그 와중인 11월에 우리나라 최대의 섬 제주도를 전격 점령해 여몽연합군을 비웃듯 위세를 떨쳤다.

연승의 단맛에 도취됐던 탓일까. 연패의 쓴맛에 와신상담한 결과던가. 1271년 5월 15일 여몽연합군은 중군·좌군·우군의 3군으로 나누어 진도를 총공격했고, 진도의 용장산성과 왕궁은 어이없이 함락당하고 말았다. 진도 측이 허병으로 위장된 중군에 몰두하고 있던 사이에 정예군으로 무장한 좌군과 우군이 진도 상륙을 감행해 용장산성과 왕궁을 점령했던 것이다. 진도 삼별초군의 자만심이 여몽연합군의 양동작전에 속아 넘어가 화를 자초한 것이다.

진도 측은 세 무리로 나누어 남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실세 배중손은 일군을 이끌고 남도석성에 이르러 추격해온 여몽연합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전해온다. 부장 김통정이 이끈 일군은 금갑포에서 대기해둔 배를 타고 진도를 탈출하는데 성공, 제주도에 입거해 항전을 계속한 삼별초의 최후 세력이 됐다. 그렇다면 마지막 일군, 진도의 고려왕 왕온과 그를 호위하던 무리는 어찌되었을까.

진도에 전해오는 설화에 의하면, 왕온 일행이 용장산성을 탈출해 의신면 침계리의 고갯길을 넘다가 왕온과 그의 아들 환이 여몽연합군에 붙잡혀서 효수됐다 한다. 오늘날 그 침계리 고개는 ‘왕고개’라 불리고, 그 왕고개에 ‘왕무덤’이라 불리는 무연고의 큰 무덤이 있으며, 그 일대가 ‘(왕온의) 머리를 논했다’는 의미의 ‘論首洞’이라 불리고 있다. 이렇듯 왕온의 최후와 관련된 설화는 지명과도 결부돼 나름 생생하고 그럴듯하다.  

▲ 또 하나의 고려왕 왕온의 비빈이 몸을 던졌다는 '진도의 낙화암' 급창둠벙

그런데 설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발 앞서가던 왕온의 비빈들은 의신천에 이르러 왕의 죽음을 알게 됐고, 마침내 의신천의 작은 둠벙(‘급창둠벙’)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이는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몸을 날렸다는 부여의 낙화암을 연상케 하는데, 그렇다면 의신천은 ‘진도의 백마강’이요 비빈들이 급창둠벙에 몸을 날렸다는 그 바위는 ‘진도의 낙화암’인 셈이다.

진도의 화려함은 그 ‘이름’에서 시작해 또 하나의 고려 왕도의 건설이라는 ‘역사’로 이어지다가, 마침내 왕온과 그 비빈들의 최후를 전하는 ‘설화’에 이르러서는 진도의 恨으로 결말을 맺는다. 진도의 그 화려함과 한스러움이 버물려져서 신명나면서도 애달픈 진도의 소리가 탄생한 것인가. 그 징한 진도 예술의 끼가 만들어진 것인가.  

  

▲ 강봉룡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ㆍ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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